독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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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0-02 05:46 조회2,038회 댓글0건본문
생명을 구하는 독뱀
“독사가 독사에게 물리면 죽을까 살까?” <동물의 왕국>류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묻는 대표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답은 이렇다.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뱀이 자기를 보호하고 또 먹이를 쉽게 잡기 위해 갖고 있는 독(毒)은 크게 신경독과 출혈독으로 나눌 수 있다. 코브라와 바다뱀에게서 볼 수 있는 신경독은 시각과 청각과 같은 감각신경뿐만 아니라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심장과 호흡을 정지시킨다. 신경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번지고 또 면역이 없어서 다른 독사에게 물리거나 실수로 자기에게 물려도 죽게 된다. 이에 반해 방울뱀이나 살모사에게서 볼 수 있는 출혈독은 모세혈관과 근육을 파괴하는데 물린 동물은 출혈과 통증으로 죽게 된다. 대부분은 뱀들은 출혈독에 대한 면역이 있어서 잠깐 동안의 마비증상을 겪고 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출혈독을 가지고 있는 독사에게 물리면 출혈과 함께 온몸으로 독이 퍼지게 된다. 하지만 이때 물린 동물의 세포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혈액 속 혈소판이 만들어내는 ‘피브린(Fibrin)’이란 단백질이 작용하여 혈액이 응고되는 혈전(血栓, 피떡)을 만들어 독이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다.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혈전들 때문에 온 몸에 독이 퍼지지 않는다면 독사에게 물려도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니지 아닌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독사의 독에는 독 말고도 비밀 병기가 숨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피브린을 분해하고 혈액응고를 방해하는 단백질 성분이다.
이 단백질 성분 때문에 뱀에 물린 동물은 혈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결국 온 몸에 뱀독이 퍼져 죽게 되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생화학자 데빈 리모토(Devin Limoto) 박사팀은 뱀의 이 치명적이고 효과적인 무기인 뱀 독 속의 단백질 성분에 주목하고 있는데 뱀독 속의 이 단백질 성분이 뇌중풍이나 심장마비 같이 혈전(血栓, 피떡) 때문에 혈관이 막히는 질병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 리모토 박사팀은 뱀독에 들어있는 단백질 성분을 이용하여 혈전 제거제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팀은 피브린 분해 단백질 성분을 분리한 뒤 청바지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과 반응을 시켰다. 그 결과 응고된 혈액이 대부분 제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해서 뱀독으로 만든 세탁용 세제를 곧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뱀독에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 성분의 양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신기술을 이용해야 충분한 양의 단백질 성분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머리에 일곱 개의 점이 있다고 해서 칠점사(七點蛇) 또는 물리면 일곱 걸음도 걷기 전에 죽는다고 해서 칠보사(七步蛇)라고 물리는 ‘까치살모사(Gloydius Saxatilis)’라는 맹독성의 독사가 살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생화학자 정광회 교수 연구팀은 까치살모사로부터 암의 전이를 강력히 억제하는 ‘삭사틸린(Saxatilin)’이라는 단백질을 찾아내었다.
삭사틸린은 신생혈관생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조직의 신생혈관생성을 억제하여 암이 주변 조직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다. 더구나 삭사틸린은 하버드 대학팀이 찾아낸 혈관생성 억제 유전자인 ‘안지오스타틴’ 보다 활성은 열 배나 강하면서도 독성은 매우 낮아 그 효율성에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삭사틸린 단백질 5그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호종으로 지정된 칠점사가 자그마치 10만 마리나 필요하다. 따라서 연구팀은 삭사틸린의 유전자를 찾아내어 분리한 뒤 효모의 일종인 피키아 파스토리스(Pichia Pastoris)에 삽입시킨 후 대량 배양시키는 신기술을 이용하였다. 정광회 교수팀의 삭사틸린 단백질 생산법은 지난 2002년에 주요 8개국으로부터 특허를 취득하였고 앞으로 2~3년 안에 신약으로 개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연의 곰팡이와 세균 그리고 식물과 동물에는 자신의 필요에 따르는 여러 가지 독이 들어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인간들은 해로운 독으로부터 많은 약리작용이 찾아냄으로써 독과 약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물질이 독(毒)이 될지 약(藥)이 될지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 (글 : 이정모-과학 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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